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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 여기저기, 나들이

[토론토:전시]Georgia O'Keeffe in Toronto

 

 

캐나다에서 이리저리 잦은 이사를 하는 와중에도 꼭꼭 챙기는 길쭉하고 빨간 통이 하나 있다.

 

이곳 토론토에 오기 전 뉴욕에 몇 개월 머물렀더랬다.

토론토에 온 이후에도 엉덩이가 들썩거려 한동안 뉴욕에 들락거렸는데,

다른 도시를 오갈 때 생기는 정서의 기복이 토론토와 뉴욕 사이에서는 유독 컸다.

캐나다 경제의 중심 토론토와 세계 문화의 중심 뉴욕. 이 두 도시의 타이틀만큼.

 

뉴욕은 '현대 문화 예술의 중심지'라는 글자로 표현하고 머리로 그리는 것,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강한 힘으로 정서를 풍요롭게 한다.

도시 구석구석, 유명한 거리와 건물은 물론이거니와 지하철, 뒷골목, 도시의 뼛속까지 짧은 시간에 농축된 독특한 에너지.

더럽고 위험하지만 희망의 열기로 들뜬 도시의 기운. 나에게 뉴욕은 그런 도시다.

 

뉴욕 맨해튼의 Bryant Park. 커다란 잔디밭 주변으로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점심시간이면 주변 직장인들이 몰려나와 점심을 먹는다. 하루종일 앉아 시간을 보내도 지겹지 않은 그리운 이곳.

 

 

그곳 뉴욕에는 도시를 살아있게 하는 자연사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비롯해

구겐하임, Neue 등 셀 수 없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과 뉴욕현대미술관(MOMA) 내부

 

 

보고 보고 또 봐도 새로운, 보고 보고 또 봐도 다 못 보는 규모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다닐 적에는

눈과 뇌와 마음에 담기에도 그 양이 너무나 방대해서, 무의식에 조금 담고, 가방에도 조금 담았더랬다.

예술가의 작품을 찍어낸 엽서나 책, 혹은 큼직하게 프린트 된 그림들.

 

저 빨간 통에는 당시 사 둔 그 그림들이 차곡차곡 들어있다.

사각거리는 모래사막을 걷는 듯한 이 토론토에서 나의 빨간 그림 통은 그야말로 보물상자랄까.

 

당장 액자를 해서 걸만큼 인생이 안정적이지 않아 집을 옮길 때마다 하나씩 꺼내서 액자 없이 벽에 붙여두곤 하는데,

피카소의 The Dreamer에 이어, 지금은 Georgia O'Keeffe의 그림을 붙여두었다.  

 

 

Red Poppy, 1927 by Georgia O'Keeffe

 

집안의 음기가 너무 강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끊임없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자리에 걸려있다.

흔들림없는 색채. 서툴지 않은 화려함. 당돌한 부드러움.

 

그런데.

이 불모지 토론토에 그녀의 전시회라니. 아 반가운 이 마음이란.

버선발로 뛰어 마중이라도 나가고 싶다만, 전시회가 이미 한창이니 마중을 나가기엔 좀 늦어버렸고.

 

그녀를 보러 AGO로.

AGO는 Art Gallery of Ontario의 약자로, 보유하고 있는 작품의 수나 규모 면에서 온타리오 주의 손꼽히는 미술관이다.

 

AGO 입구에 붙은 Georgia O'Keeffe 포스터와 AGO 맞은편 작은 갤러리.

 

AGO 내부. Georgia O'Keeffe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글자들.

 

 

Georgia O'Keeffe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위스콘신 출신으로 미국 정밀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 꼽힌다. 미술을 공부하고 교사로 일하다 작품 몇 점이 친구를 통해 당대를 대표하던 사진작가 Stieglitz의 눈에 띄면서, 1916년, 그러니까 서른 즈음 뉴욕의 갤러리 291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경제적 심리적 여러 면에서 큰 조력자였던 Stieglitz와 8년 후인 1924년 결혼을 한다. Stieglitz는 그녀를 피사체로 주목할만한 사진들을 여럿 남겼고, 여러 번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Georgia O'Keeffe의 의도와는 다른 편치않은 세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당시 뉴욕에서 지내면서 그린 뉴욕의 건물과, 야경, 산업지구의 그림들도 볼 수 있다. Stieglitz에게 배운 사진 기술은 그녀 작품 활동의 전환을 가져왔다. 

 

“I have been much photographed, I am at present prejudiced in favour of photography.”

 

그녀를 대표하는 그림 중 하나는 프레임을 가득채우는 확대된 꽃 그림인데, 이를 여성성으로 해석하는 것을 부인했다 알려져 있다.

 

"Nobody sees a flower - really - it is so small it takes time - we haven't time - and to see takes time, like to have a friend takes time."

 

Stieglitz가 죽은 1946년 이후에는 뉴멕시코에서 하얗게 빛바랜 동물의 뼈들, 사막과 절벽 등 자연을 화폭에 담으며 여생을 보낸다.

 

 

 

 

 

A Painter's Kitchen과 Dinner with Georgia O'Keeffe라는 책을 들춰도 보고 싶고 사고도 싶었으나, 모두 솔드아웃.

 

그래도 오늘 내 거실, Red Poppy에 전보다 풍성한 여러겹의 이야기를 실었다. 

 

다시 빨간 보물상자를 열게되는 날,

선택될 다음 화가의 전시회가 또 열리도록 주문을 걸어야겠다.